본문 바로가기
  • 시인 안재식-세상을 만나려고 꽃을 본다
  • 소식이 온다
동화

왕이 없는 나라 / 안재식 작가.. 어른이 읽는 동화..

by 시인 안재식 2024. 11. 30.

<동화가 있는 풍경〉
    
왕이 없는 나라

안재식(小亭  安在植)



  동쪽의 넓고넓은 바다를 안고 동글동글하게 살아가고 있는 조약돌 마을이 있었어요.
조약돌 나라는 왕이 없어도 평화로웠어요.

  평화로운 조약돌 마을에 거센 파도가 밀려와 마을을 쑥대밭으로 뒤집어놓고 가는 일이 종종 있었지요. 그럴 때마다 조약돌들은 휩쓸려 내려가지 않도록 서로서로 붙잡아주고 위로하면서 오순도순 사이좋게 살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천둥 번개가 무섭게 번갈아 치며 변덕을 부렸어요.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었지요. 커다란 파도와 함께 큰 돌멩이 하나가 조약돌 마을로 얼떨결에 떠밀려오게 되었어요.

  큰 돌멩이는 바닷속 커다란 바위틈에 끼어 살았었는데, 잠든 사이 파도에 휩쓸려 버리고 말았던 것이에요.

  한밤중에 낯선 마을로 떠밀려와 꼼짝할 수 없는 신세가 되어 버린 돌멩이는 무서움에 떨면서 밤새 울었어요. 자기가 살던 곳으로 가고 싶었지만,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어쩔 도리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무서웠어요.

  돌멩이는, 동글동글 작고 순진한 조약돌들보다 몸집이 크고 험상궂게 생겼어요.  초청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돌멩이가 나타나자 조약돌들은 겁을 먹게 되었어요. 그래서 조약돌들은 무섭게 생긴 돌멩이에게 눈길조차 주지를 않고 슬슬 피하곤 했어요.

  살던 집으로 가지도 못하는 신세가 서러워 울고 또 울어도 조약돌들조차 모른 척하니 더욱 슬프고 야속한 마음이 들었어요. 외로워진 돌멩이는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조약돌들에게 부탁을 하였지요.

   “조약돌님, 내가 몸집도 크고 험상궂어 보이지만 나도 여러분처럼 순진한   돌멩이랍니다. 전에 내가 살던 곳은 나보다 더 험상궂고 덩치가 큰 바위들   뿐이었지요. 하지만 큰 파도가 밀려와 바위를 흔들어 놓는 날엔 덩치 큰 바위들에게 의지하며 그 틈에 몸을 끼고 안전하게 살았었지요. 그래서 나 도 내가 살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도저히 내 힘으로는 몸을 움직여  그곳으로 갈 수가 없으니 어떡합니까! 가는 날까지 만이라도 여러분과 함께 살도록 해주세요. 그러면 조약돌 마을 규칙도 잘 따르고, 여러분보다  덩치가 크니까 도와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러지요. 우리보다 몸집이 커서 땅을 넓게 차지하겠지만, 우리가 조금씩 양보하면 같이 사는데 문제는 없을 것 같아요.”

  돌멩이의 간절한 부탁에 조약돌들은 함께 사는 것을 허락해 주었어요.

  그리고 돌멩이가 땅을 쓰도록 조금씩 양보를 해주고, 먹을 것도 나눠주고, 파도를 피하는 방법도 알려주었어요.

  조약돌들은 옹기종기 모여앉아 불평을 늘어놓았어요.

   “어디서 굴러먹던 돌멩인지 모르지만 갑자기 쳐들어와 평화롭던 우리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어!”

   “반질반질 멋진 내 몸도 왕 돌멩이 때문에 뾰족하고 거칠게 볼품없이 되고 말았어!”

   “어이구, 말도 말아요. 우리 집 큰아이가 저 왕 돌멩이한테 배웠는지 친구들과 매일 싸움질이에요.”

   “아, 글쎄, 우리 할멈은 왕 돌멩이가 밀어서 허리가 부러졌어. 어이구, 불쌍한 우리 할멈!”

   “자, 여러분! 우리들도 더이상 당하지만 말고 저 못된 왕 돌멩이를 우리 마을에서 쫓아냅시다!”

   “그래요, 그렇게 합시다. 우리가 힘을 합친다면 못된 돌멩이를 이길 수 있을 거예요.”

  조약돌들은 왕 돌멩이를 마을에서 내쫓아버리기로 했어요.

  가장 뾰족하게 거칠어진 조약돌이 제일 앞에 서서 왕 돌멩이를 밀치기 시작했어요.

   “아이고, 아파! 왕 돌멩이 살려줘! 웬 조약돌들이 동글동글 하지 않고, 왜이리 뾰족하고 거친 거야. 에고, 내 허리야.”

  왕 돌멩이가 조약돌들을 내려다보니, 전에 보았던 예쁜 모습은 보이지를 않고, 모두가 거칠고 모난 조약돌들만 잔뜩 있는 걸 보고 크게 놀랐어요.

  왕 돌멩이는 조약돌 마을에서 나이가 제일 많은 조약돌에게 그 이유를 물었어요.

   “어이, 영감 조약돌! 조약돌들이 왜 이렇게 험상궂게 변한 거야? 이젠 나한테도 덤비고 있잖아?”

   “그건 왕 돌멩이님이 작고 동그란 조약돌들을 자꾸만 밀고 자빠뜨려서 그렇게 된 거에요. 깔려서 깨지고 부서져 뾰족해진 것이지요.”

  왕 돌멩이 탓이라는 영감 조약돌의 말에,

   “못된 조약돌들 같으니라고, 감히 내 탓이라고!”

하면서 버럭 화를 내고 영감 조약돌을 힘껏 밀어버렸어요.




그 날 밤, 왕 돌멩이의 꿈속에는 낮에 본 나이 많은 영감 조약돌이 나타났어요.

  낮에 밀친 곳이 으깨져서 뾰족해진 쪽을 들이밀며 왕 돌멩이에게 달려들었어요. 영감 조약돌은 왕 돌멩이가 도망가도 따라와 부딪히고 밀치기를 계속했어요. 덩치 큰 왕 돌멩이의 몸도 뿌지직 소리를 내며 부서지기 시작했어요.

  평소 왕 돌멩이가 큰소리를 내면 벌벌 떨던 영감 조약돌이 이젠 아무리 야단을 치고 화를 내어도 떨기는커녕 무섭게 계속 달려드는 것이었어요.

   “살려주세요. 살려줘! 제발 그만!”

  영감 조약돌에게 울면서 사정을 하다가, 왕 돌멩이는 꿈에서 깨어났어요.

   “휴우, 꿈이었구나. 다행이닷!”

  왕 돌멩이는 꿈속에서 일어났던 일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어요. 처음 조약돌들을 만났을 때, 그들의 모습은 동글동글하고 친절하기만 하였는데, 돌멩이가 왕이 되고부터 깨지고 모나게 변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어요.

  빨간 해가 바다에서 쏘옥 얼굴을 내밀더니 방글방글 웃는 아침이 되었어요. 왕 돌멩이는 조약돌들을 향해 말을 꺼냈어요.



  조약돌들은 왕 돌멩이가 오늘도 무슨 못된 짓을 할까? 의심의 눈초리로 몸을 움츠리고 눈을 떼지 않았어요. 그러면서도 언제든지 뾰족한 몸뚱이로 덤벼들 자세를 하고 있었어요.

   “조약돌님들, 내가 여러분께 아주 많이 못된 짓을 저질렀습니다. 여러분께서 나에게 살아갈 자리를 마련해 주고 친절하게 대해 주었는데, 난 그걸 까맣게 잊어버리고 왕으로 모시라면서 못되게 굴었습니다. 조약돌 마을엔 왕 같은 것은 필요없는 곳인데도 내가 욕심을 부렸어요. 결국 여러분을 거칠게 만들었고요. 여러분이 나를 용서해 준다면, 내가 처음 이 마을에 들 어와서 약속한 대로 앞으로는 거친 파도를 피할 수 있도록 여러분의 방패막이가 되겠습니다.”

  왕 돌멩이는 조약돌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빌었어요.

  그러나 조약돌들은 돌멩이의 말을 믿을 수 없다고 하면서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어요.

  그 날 이후로 돌멩이의 행패는 더이상 볼 수 없게 되었어요.

  돌멩이는 진심을 알아주지 않는 조약돌들이 야속하였어요. 그러나 어떠한 변명도 하지 않았어요. 거세게 밀려오는 파도를 온몸으로 막아내면서 조약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땅바닥에 몸을 찰싹 붙이고 파도와 사투를 벌였지요.



  오랜 시간이 지나갔어요. 조약돌들의 뾰족한 몸은 부드러운 파도의 손길에 매만져지면서 반질반질 동글동글하게 예뻤던 본디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어요.

  조약돌 마을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지요. 그때 작은 속삭임이 들려오기 시작했어요.

   “우리들은 조약돌 마을에 살고 있는 모래알이랍니다. 조약돌님들 덕분에 파도에 떠밀리지 않고 평화롭게 살고 있지요. 조약돌님 마을에 평화가 곧 우리들의 행복이에요.”

  조약돌들과 돌멩이는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어디에서 나는 소리인지 몰라 두리번두리번 하였어요.

   “여기, 여기에요. 여러분이 밟고 있는 모래랍니다.”

  그때서야 발아래 쪽을 내려다보니, 반짝이는 작은 체구를 한 모래들이 방긋방긋 웃고 있었어요.

   “어머! 미안해요. 우리가 모래님들의 작은 체구를 밟고 있었네요.”

   “미안할 것까지야 있나요. 우리가 비록 체구는 작지만 서로서로 뭉쳐 있어서 여러분 무게 정도는 거뜬하게 참을 수 있답니다. 다만 여러분이 싸우고 밀치느라 왔다갔다 하면 우리도 흩어지게 된답니다. 그동안 우리도 살기가 무척이나 힘들었어요.”

   “우리 때문에 그랬군요. 우리는 돌멩이 때문에 피해 입은 것만 억울해서 싸우다 보니, 모래님들의 고통은 생각하지를 못했어요. 아휴, 정말 미안해요.”



   “내 잘못이 크지요. 나만 편하자고 조약돌들에게 행패를 부렸으니, 조약돌님들과 모래님들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빕니다.”

  돌멩이가 몸을 움직여 큰절을 하려고 하니, 그 밑에 깔릴 뻔한 조약돌과 모래가 아프다고 엄살을 떨었어요.

  그 모습이 어찌나 우스운지, 조약돌들과 모래들은 서로 쳐다보며 큰소리로 웃었어요. 돌멩이도 따라 웃었고요.

  웃음소리에 조약돌 틈에서 꿀잠을 자고 있던 게도 깨어났어요.

   “조약돌 마을에 찾아온 평화를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나도 이 마을에 살고 있답니다.”

  커다란 왕발로 뒤뚱뒤뚱 옆으로 걷는 가위질 춤을 추며 게도 축하를 해주었어요.  

안재식 (安在植, 雅號 小亭)

E-mail green21an@hanmail.net

ꠛ  등단  월간 아동문학(동화), 자유문학(시)  ꠛ  수상  한국아동문화대상 등 다수.  ꠛ  현재  국제PEN클럽한국본부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 한국아동문학인협회 회원, 한국아동문학회 이사, 한국아동문학연구회 상임위원, 한국녹색문학회 회장, 중랑문인협회 명예회장,  중랑문학대학 지도교수(문학일반론 및 동시, 동화 창작법 강의)  ꠛ  저서  환경동화『꽃동네 아이들』,『조갯터에서 생긴 일』,『공룡을 닮아가는 지구 사람들』,『지구야 웃어봐』,『아낌없이 주는 지구(환경부선정 우수환경도서)』, 환경소설『야누스의 두 얼굴(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선정 권장도서』外. ꠛ

〈동화가 있는 풍경〉

        

왕은 필요없어요

 

                                                 안재식(小亭  安在植)

 

  동쪽의 넓고넓은 바다를 안고 동글동글하게 살아가고 있는 조약돌 마을이 있었어요.

  평화로운 조약돌 마을에 거센 파도가 밀려와 마을을 쑥대밭으로 뒤집어놓고 가는 일이 종종 있었지요. 그럴 때마다 조약돌들은 휩쓸려 내려가지 않도록 서로서로 붙잡아주고 위로하면서 오순도순 사이좋게 살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천둥 번개가 무섭게 번갈아 치며 변덕을 부렸어요.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었지요. 커다란 파도와 함께 큰 돌멩이 하나가 조약돌 마을로 얼떨결에 떠밀려오게 되었어요.

  큰 돌멩이는 바닷속 커다란 바위틈에 끼어 살았었는데, 잠든 사이 파도에 휩쓸려 버리고 말았던 것이에요.

  한밤중에 낯선 마을로 떠밀려와 꼼짝할 수 없는 신세가 되어 버린 돌멩이는 무서움에 떨면서 밤새 울었어요. 자기가 살던 곳으로 가고 싶었지만,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어쩔 도리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무서웠어요.

  돌멩이는, 동글동글 작고 순진한 조약돌들보다 몸집이 크고 험상궂게 생겼어요.  초청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돌멩이가 나타나자 조약돌들은 겁을 먹게 되었어요. 그래서 조약돌들은 무섭게 생긴 돌멩이에게 눈길조차 주지를 않고 슬슬 피하곤 했어요.

  살던 집으로 가지도 못하는 신세가 서러워 울고 또 울어도 조약돌들조차 모른 척하니 더욱 슬프고 야속한 마음이 들었어요. 외로워진 돌멩이는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조약돌들에게 부탁을 하였지요.

   “조약돌님, 내가 몸집도 크고 험상궂어 보이지만 나도 여러분처럼 순진한   돌멩이랍니다. 전에 내가 살던 곳은 나보다 더 험상궂고 덩치가 큰 바위들   뿐이었지요. 하지만 큰 파도가 밀려와 바위를 흔들어 놓는 날엔 덩치 큰 바위들에게 의지하며 그 틈에 몸을 끼고 안전하게 살았었지요. 그래서 나 도 내가 살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도저히 내 힘으로는 몸을 움직여  그곳으로 갈 수가 없으니 어떡합니까! 가는 날까지 만이라도 여러분과 함께 살도록 해주세요. 그러면 조약돌 마을 규칙도 잘 따르고, 여러분보다  덩치가 크니까 도와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러지요. 우리보다 몸집이 커서 땅을 넓게 차지하겠지만, 우리가 조금씩 양보하면 같이 사는데 문제는 없을 것 같아요.”

  돌멩이의 간절한 부탁에 조약돌들은 함께 사는 것을 허락해 주었어요.

  그리고 돌멩이가 땅을 쓰도록 조금씩 양보를 해주고, 먹을 것도 나눠주고, 파도를 피하는 방법도 알려주었어요.

  조약돌들과 돌멩이는 다투지 않고, 낮에는 온몸이 노곤노곤해질 때까지 햇살에 찜질을 하면서 사이좋게 살았어요. 하늘이 높고 푸르른 날이면 파도와 갈매기의 합창을 따라 신나게 노래도 부르고, 밤바다에 멱감으러 뛰어드는 별을 세면서 평화로운 생활에 서로 만족하였지요.

 

  점점 더 햇살이 뜨겁게 용광로처럼 달구어지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해님도 피서를 떠났는지 장마가 다가왔어요.

  천둥과 번개가 치고 폭풍우가 불었어요. 바다는 커다란 물기둥 파도를 일으키며 조약돌 마을을 뒤집고 흔들기 시작했어요. 갑자기 들이닥친 폭풍우로 조약돌 마을은 초긴장 상태에 들어갔어요.

  조약돌들은 각자의 몸을 땅바닥에 찰싹 붙이고 폭풍우가 빨리 끝나기를 바라고 있었어요.

  몸집이 큰 돌멩이도 파도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휩쓸려 여기저기 상처가 났어요. 도통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어요.

  그때 돌멩이를 향해 조약돌들이 소리치기 시작했어요.

   “어이구! 조약돌 깔려죽겠네. 돌멩이님, 파도에 밀리지 않도록 땅바닥에 몸을 밀착하고 있어야 해요. 그러지 않으니까 우리들을 깔아뭉개고 있잖아요.”

   “조약돌님, 나도 어지러워 죽겠어요. 전에 살던 곳으로 휩쓸려갔으면 좋겠는데, 몸을 움직여도 도로 제자리니, 하여간 조금만 참으세요.”

  돌멩이는 전에 살던 곳으로 가려고 무진장 애를 썼지만, 밀려오는 파도에 어지럼만 일 뿐 다시 제자리였어요. 파도가 거센 날, 바닷속에서는 바위틈에 몸을 숨기고 있으면 힘들지 않았었지요. 그러나 조약돌 마을에선 파도를 피해 숨을 곳도 없다는 사실에 슬슬 화가 나면서 전에 살던 곳이 그리워 엉엉 울고 싶었어요.

  반면에 조약돌들은 덩치가 큰 돌멩이에게 깔려서 몸뚱이가 으깨지기 시작하였어요. 돌멩이에게 조심하라고 일제히 소리를 질렀어요. 이윽고 마을에 같이 살게 해 준 것을 후회하게 되었지요.

  돌멩이도 깔려 있는 조약돌들에게 화풀이를 하였어요.

   “너희들과 살다가는 오히려 나만 죽겠어. 너희들이 작다 보니 도움받을 것도 없고, 이제부터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 테다. 여기서는 내가 몸집도 크고 힘이 제일 세잖니? 그러니까 이제부터 내가 왕을 할 테다. 모두 그리 알고 내가 시키는 대로 햇!”
  지금까지 불쌍한 얼굴을 하고 있던 돌멩이가 갑자기 사납게 돌변하였어요.

  그런 모습에 조약돌들은 기가 질려 아무도 돌멩이의 호통에 반대를 못하였어요.  결국 조약돌들은 돌멩이의 폭력과 횡포에 벌벌 떨면서 어쩔 수 없이 왕으로 모시기로 했지요.

  그러나 왕 돌멩이의 횡포가 점점 심해지니, 조약돌들은 함께 살아가기가 힘들었어요. 그래서 파도가 심하게 치는 날이면 하나, 둘 마을을 떠나기 시작했지요.

  조약돌 하나가 떠날 적마다 왕 돌멩이는 남아 있는 조약돌들을 밀고 자빠뜨리며 화풀이가 심해졌어요.

  마침내 조약돌들은 상처가 많이 나서 몸뚱이가 뾰족하게 변하였어요. 반질반질 윤이 나고, 동글동글 예쁘던 조약돌들이 뾰족뾰족한 모습으로 험상궂게 변하였어요. 결국 왕 돌멩이의 성격을 닮아갔어요.

  조약돌들은 옹기종기 모여앉아 불평을 늘어놓았어요.

   “어디서 굴러먹던 돌멩인지 모르지만 갑자기 쳐들어와 평화롭던 우리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어!”

   “반질반질 멋진 내 몸도 왕 돌멩이 때문에 뾰족하고 거칠게 볼품없이 되고 말았어!”

   “어이구, 말도 말아요. 우리 집 큰아이가 저 왕 돌멩이한테 배웠는지 친구들과 매일 싸움질이에요.”

   “아, 글쎄, 우리 할멈은 왕 돌멩이가 밀어서 허리가 부러졌어. 어이구, 불쌍한 우리 할멈!”

   “자, 여러분! 우리들도 더이상 당하지만 말고 저 못된 왕 돌멩이를 우리 마을에서 쫓아냅시다!”

   “그래요, 그렇게 합시다. 우리가 힘을 합친다면 못된 돌멩이를 이길 수 있을 거예요.”

  조약돌들은 왕 돌멩이를 마을에서 내쫓아버리기로 했어요.

  가장 뾰족하게 거칠어진 조약돌이 제일 앞에 서서 왕 돌멩이를 밀치기 시작했어요.

   “아이고, 아파! 왕 돌멩이 살려줘! 웬 조약돌들이 동글동글 하지 않고, 왜이리 뾰족하고 거친 거야. 에고, 내 허리야.”

  왕 돌멩이가 조약돌들을 내려다보니, 전에 보았던 예쁜 모습은 보이지를 않고, 모두가 거칠고 모난 조약돌들만 잔뜩 있는 걸 보고 크게 놀랐어요.

  왕 돌멩이는 조약돌 마을에서 나이가 제일 많은 조약돌에게 그 이유를 물었어요.

   “어이, 영감 조약돌! 조약돌들이 왜 이렇게 험상궂게 변한 거야? 이젠 나한테도 덤비고 있잖아?”

   “그건 왕 돌멩이님이 작고 동그란 조약돌들을 자꾸만 밀고 자빠뜨려서 그렇게 된 거에요. 깔려서 깨지고 부서져 뾰족해진 것이지요.”

  왕 돌멩이 탓이라는 영감 조약돌의 말에,

   “못된 조약돌들 같으니라고, 감히 내 탓이라고!”

하면서 버럭 화를 내고 영감 조약돌을 힘껏 밀어버렸어요.

 

  그 날 밤, 왕 돌멩이의 꿈속에는 낮에 본 나이 많은 영감 조약돌이 나타났어요.

  낮에 밀친 곳이 으깨져서 뾰족해진 쪽을 들이밀며 왕 돌멩이에게 달려들었어요. 영감 조약돌은 왕 돌멩이가 도망가도 따라와 부딪히고 밀치기를 계속했어요. 덩치 큰 왕 돌멩이의 몸도 뿌지직 소리를 내며 부서지기 시작했어요.

  평소 왕 돌멩이가 큰소리를 내면 벌벌 떨던 영감 조약돌이 이젠 아무리 야단을 치고 화를 내어도 떨기는커녕 무섭게 계속 달려드는 것이었어요. 

   “살려주세요. 살려줘! 제발 그만!”

  영감 조약돌에게 울면서 사정을 하다가, 왕 돌멩이는 꿈에서 깨어났어요.

   “휴우, 꿈이었구나. 다행이닷!”

  왕 돌멩이는 꿈속에서 일어났던 일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어요. 처음 조약돌들을 만났을 때, 그들의 모습은 동글동글하고 친절하기만 하였는데, 돌멩이가 왕이 되고부터 깨지고 모나게 변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어요.

  빨간 해가 바다에서 쏘옥 얼굴을 내밀더니 방글방글 웃는 아침이 되었어요. 왕 돌멩이는 조약돌들을 향해 말을 꺼냈어요.

  조약돌들은 왕 돌멩이가 오늘도 무슨 못된 짓을 할까? 의심의 눈초리로 몸을 움츠리고 눈을 떼지 않았어요. 그러면서도 언제든지 뾰족한 몸뚱이로 덤벼들 자세를 하고 있었어요.

   “조약돌님들, 내가 여러분께 아주 많이 못된 짓을 저질렀습니다. 여러분께서 나에게 살아갈 자리를 마련해 주고 친절하게 대해 주었는데, 난 그걸 까맣게 잊어버리고 왕으로 모시라면서 못되게 굴었습니다. 조약돌 마을엔 왕 같은 것은 필요없는 곳인데도 내가 욕심을 부렸어요. 결국 여러분을 거칠게 만들었고요. 여러분이 나를 용서해 준다면, 내가 처음 이 마을에 들 어와서 약속한 대로 앞으로는 거친 파도를 피할 수 있도록 여러분의 방패막이가 되겠습니다.”

  왕 돌멩이는 조약돌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빌었어요.

  그러나 조약돌들은 돌멩이의 말을 믿을 수 없다고 하면서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어요.

  그 날 이후로 돌멩이의 행패는 더이상 볼 수 없게 되었어요.

  돌멩이는 진심을 알아주지 않는 조약돌들이 야속하였어요. 그러나 어떠한 변명도 하지 않았어요. 거세게 밀려오는 파도를 온몸으로 막아내면서 조약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땅바닥에 몸을 찰싹 붙이고 파도와 사투를 벌였지요.

 

  오랜 시간이 지나갔어요. 조약돌들의 뾰족한 몸은 부드러운 파도의 손길에 매만져지면서 반질반질 동글동글하게 예뻤던 본디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어요.

  조약돌 마을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지요. 그때 작은 속삭임이 들려오기 시작했어요.

   “우리들은 조약돌 마을에 살고 있는 모래알이랍니다. 조약돌님들 덕분에 파도에 떠밀리지 않고 평화롭게 살고 있지요. 조약돌님 마을에 평화가 곧 우리들의 행복이에요.” 

  조약돌들과 돌멩이는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어디에서 나는 소리인지 몰라 두리번두리번 하였어요.

   “여기, 여기에요. 여러분이 밟고 있는 모래랍니다.”

  그때서야 발아래 쪽을 내려다보니, 반짝이는 작은 체구를 한 모래들이 방긋방긋 웃고 있었어요.

   “어머! 미안해요. 우리가 모래님들의 작은 체구를 밟고 있었네요.”

   “미안할 것까지야 있나요. 우리가 비록 체구는 작지만 서로서로 뭉쳐 있어서 여러분 무게 정도는 거뜬하게 참을 수 있답니다. 다만 여러분이 싸우고 밀치느라 왔다갔다 하면 우리도 흩어지게 된답니다. 그동안 우리도 살기가 무척이나 힘들었어요.”

   “우리 때문에 그랬군요. 우리는 돌멩이 때문에 피해 입은 것만 억울해서 싸우다 보니, 모래님들의 고통은 생각하지를 못했어요. 아휴, 정말 미안해요.”

   “내 잘못이 크지요. 나만 편하자고 조약돌들에게 행패를 부렸으니, 조약돌님들과 모래님들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빕니다.”

  돌멩이가 몸을 움직여 큰절을 하려고 하니, 그 밑에 깔릴 뻔한 조약돌과 모래가 아프다고 엄살을 떨었어요.

  그 모습이 어찌나 우스운지, 조약돌들과 모래들은 서로 쳐다보며 큰소리로 웃었어요. 돌멩이도 따라 웃었고요.

  웃음소리에 조약돌 틈에서 꿀잠을 자고 있던 게도 깨어났어요.

   “조약돌 마을에 찾아온 평화를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나도 이 마을에 살고 있답니다.”

  커다란 왕발로 뒤뚱뒤뚱 옆으로 걷는 가위질 춤을 추며 게도 축하를 해주었어요.  

 

안재식 (安在植, 雅號 小亭)

E-mail green21an@hanmail.net

ꠛ  등단  월간 아동문학(동화), 자유문학(시)  ꠛ  수상  한국아동문화대상 등 다수.  ꠛ  현재  국제PEN클럽한국본부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 한국아동문학인협회 회원, 한국아동문학회 이사, 한국아동문학연구회 상임위원, 한국녹색문학회 회장, 중랑문인협회 명예회장,  중랑문학대학 지도교수(문학일반론 및 동시, 동화 창작법 강의)  ꠛ  저서  환경동화『꽃동네 아이들』,『조갯터에서 생긴 일』,『공룡을 닮아가는 지구 사람들』,『지구야 웃어봐』,『아낌없이 주는 지구(환경부선정 우수환경도서)』, 환경소설『야누스의 두 얼굴(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선정 권장도서』外. ꠛ

 

댓글